일본 사는 남자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일본에 놀러와서 함께 '아마노하시다테'와 교토를 1박2일로 다녀온 M군이 커피 한잔 하자고 연락이 왔다. 친구에게 들은 호주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잔뜩 늘어놓던 M군이 뜬금없이 '형님, 사케가 뭐에요?' 라고 묻는다. 일본에 사는 M군이 뜻을 몰라서 물을리가 없고, 내가 짐작하고 있는 내용이 맞을 거라 생각하며 반문을 했다.


그러자 호주에서 온 친구가 사케를 마시고 싶다며 사케 먹으러 가자고 했다는데, 그 말을 가지고 한참 동안 친구에게 설명을 해 줬다는 것이다. 역시 짐작하던 내용이 맞았다. 왜 그런 표현을 쓰는지 예전부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고 그러한 표현을 쓰는 지인들에게 항상 제대로 된 말을 알려 주곤 했지만, 한국인의 대부분이 '사케'라는 표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에서 놀러온 지인이나 손님들은 항상 이런 말들을 한다.


'일본에 왔으니 사케 한잔 해야지!!'


여기서 말하는 사케가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케가 뭐에요? 라고 물으면 사케가 사케지, 일본술! 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도 입에 익은 말이 편한지 한국에 돌아가서 가끔 카톡으로 사케라는 말을 또 쓴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는 말하는 '사케'는 '니혼슈' 즉, 청주를 의미한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에서 술을 마실때는 '사케'라는 말로는 통하지 않으니 제대로 알고 주문해야 원하는 술을 마실 수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케'에 대한 개론을 이야기해 보자. 한국에 비해 술의 종류가 다양한 일본은 그 브랜드도 다양하다. 브랜드까지 다 언급하기에는 너무 방대해서 술의 종류에 대해서만 알아보겠다.


우선 '사케'라는 말은 일본어로  酒(さけ)라고 하는데, 한자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 술(주)자이다. 즉 일본에서는 알코올이 함유된 모든 술을 통칭하여 '사케'라고 부르고 있으며, 여기에는 와인, 맥주, 위스키 등 외국 술도 모두 포함된다. 앞에 お(오)를 붙여서 お酒(오사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술을 주문할 때 '사케'를 달라고 하면 반드시 어떤 술을 원하는지를 묻게 되고, 메뉴에 적힌 수많은 술 종류중에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그러면 서양술은 제외하고 한국인이 '사케'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니혼슈'외에 일본술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많은 종류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일본술과, 일본인의 술마시는 방법인 노미카타(飲み方)에 대해 알아보자.



소주


한국의 소주가 쌀로 만드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소주는 다른 원료를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보리와 고구마이다. 보리로 만든 소주를 무기소주(麦焼酎),, 고구마로 만든 것을 이모소주(芋焼酎)라고 하며 둘 다 알콜도수는 25도 가량 된다. 한국인에 비해 술을 과하게 마시지는 않는 일본인들은 25도의 소주를 그대로 마시는 일은 없고 다양한 방법으로 술을 연하게 희석해서 마신다. 이를 '노미카다'라고 한다. 일본에서 소주를 주문할 때는 반드시 무기소주, 이모소주 등 술의 종류와 함께 어떻게 마실지에 대한 노미카타를 말해줘야 한다. 



'노미카타'는 로크(ロック), 미즈와리(水割り), 오유와리(お湯割り)의 세가지가 가장 일반적이다. '로크'는 한국의 언더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즈와리'와 '오유와리'의 와리는 나누다, 배분하다는 의미인데 한자대로 미즈와리는 물, 오유와리는 뜨거운물을 넣은 술을 말한다. 이때 7:3 정도의 비율로 물이 훨씬 많이 들어가서 굉장히 연한 술이 된다. 술은 취하려고 마신다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탄산수를 넣는 탄산와리, 우롱차를 넣는 우롱와리 등 다양한 노미카타가 존재하고, 일반적이지 않지만 자신이 마시기 편한 음료에 타서 마시기도 한다.



■ 츄하이(酎ハイ)


츄하이는 소주에 탄산과 과즙을 넣은 술인데, 너무 유명한 '호로요이'가 바로 '츄하이'이다. 조금 고급 술집에서는 진짜 과즙을 넣어주지만, 대부분의 술집에서는 과일맛 시럽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시럽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맛의 츄하이를 제공할 수 있다.


■ 니혼슈(日本酒)



한자대로 읽으면 일본주, 청주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종과 같은 느낌이다. 쌀을 주원료로 하며 알콜도수는 15~16도이다. 니혼슈는 추운겨울에 뜨겁게 데워먹는 '아쯔깡'이 제맛이다. 여름에는 차갑게 마시는 冷酒(레이슈)로도 마시는데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미리 냉장고에 넣어서 차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통주인 니혼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니혼슈를 와인처럼 와인잔에 마시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와인잔에 마시면 맛있는 니혼슈'라는 주제로 니혼슈 경연대회까지 개최될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 우메슈(梅酒)


매실주를 일컫는 우메슈는 한국 집에서 담가 마시는 매실주에 비해 그 맛이 달고 마시기가 편해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우메슈는 그리 독한 술이 아니기 때문에 얼음만 넣는 '로크'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탄산수을 타서 마시는 탄산와리도 꽤 인기가 있다.


이 정도가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일본의 술이다. 맥주, 양주, 와인 등은 물론 위의 일본술 모두를 통칭해서 술(酒:사케)이라고 말하고 일반적으로 오사케(お酒)라고 한다. 즉 일본의 '사케'에는 종류별로 각각의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이자카야를 가면 이모소주, 무기소주, 니혼슈, 우메슈 라는 메뉴에 각각 몇가지 브랜드의 술을 준비해 놓는 경우가 많다. 이모소주만도 전국에 수백개의 브랜드가 있고, 무기소주, 니혼슈, 우메슈도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이 출시된다.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의 술을 준비해 놓는 것이다. 


자, 그럼 예를 들어 내가 일본 이자카야에서 술을 주문한다고 가저하자. 어떤 술이 땡기는지에 따라 오늘은 소주로 시작해 볼까 한다. 무기소주와 이모소주 중에 무기소주를 선택했다. 이 가게는 무기소주를 5종류 준비해 두고 있다. 아는 브랜드도 있지만 모르는 곳도 있다. 어떤 브랜드를 마실까 고민을 하다 늘 먹던걸로 하자는 생각에 A사의 제품으로 정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어떻게 마실지 노미카타를 정해야 한다. 어제 과음을 했더니 너무 진하게는 싫고 시원하게 '미즈와리'로 정하고 주문을 했다.


소주 -> 무기소주 -> A사제품 -> 미즈와리


미즈와리 소주한잔을 마시기 위해 무려 4단계의 선택을 해야한다. 이는 어찌보면 굉장히 불편한 일일 수도 있으나, 개개인이 원하는 취향으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는 굉장히 선호된다. 함께 모여 같은 소주 같은 소주잔을 기울이는 한국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일본의 술(=사케)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아보았다. 한국인이 말하는 '사케'란 일본에서 술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따라서 '사케'라는 술의 종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막걸리 주세요, 소주 주세요라고 하지 술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듯, 일본에서도 '사케 구다사이(술 주세요)'라고 말하면 제대로 된 주문을 할 수 없다. 일본 술의 종류와 마시는 방법에 대해 이해를 하고 주문을 한다면, 더 다양하게 일본 술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