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일본의 음식점을 소개하는 방송이나 홈페이지를 보면 B級グルメ(B급구루메)라는 말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グルメ(구루메)는 프랑스어 'gourmet' 의 일본식 표기로 '미식' 혹은 '미식가' 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일본에서는 보통 맛집과 관련된 콘텐츠에 '구루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타베로그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맛집 정보 사이트의 이름도 'gurunavi(구루나비)'인데 gourmet(구루메) 와 navigation(네비게이션)의 두 단어를 조합하여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구루메'라는 단어를 맛집을 지칭해서 사용한다면, 앞에 B級(B급)이라는 말을 붙인 B級グルメ(B급구루메)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까요? 말 그대로 A급이 아닌 B급? 싸구려 음식? 다양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실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부터는 편의상 'B급 음식'이라는 표현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B급 음식은 저렴하고 사치스럽지 않고 서민적이면서 맛있다고 소문난 요리를 통칭하는 의미로 1985년 무렵부터 사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여기에는 외식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가정요리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 무렵부터 전국 각지의 특징을 살린 저렴하고 서민적인 요리를 새롭게 창출하여 각 지역의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음식을 B급 음식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사카는 타코야키, 도쿄는 몬자야키 라는 식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대부분 B급 음식인 셈입니다.


대표적인 B급 음식


도쿄 몬자야키도쿄 : 몬자야키


히로시마야키히로시마 : 히로시마야키


사누키우동카가와현 : 사누키우동


카레라면홋카이도 : 카레라면


타코라이스오키나와 : 타코라이스


그러나 이러한 B급 음식은 해당 지역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향토음식과는 크게 다르며, 역사가 깊지 않고 농어촌 생활에 뿌리를 내린 전통음식이 아니라 최근 들어 개발된 음식들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지역부흥'을 위한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음식점이나, 관련 그룹이 유행에 편승해 상업적으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2006년부터 B급 음식을 출품하고 순위를 메기는 '음식축제 B-1 그랑프리'가 매년 개최되고 있는데 지명도의 상승과 비례하여 그랑프리 출전을 위해 B급 음식의 창작을 급조하는 경향도 있고, 단순히 지역 특산 식재료를 사용한 것 만으로 억지로 해당 지역 음식을 자칭하는 발상 등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B급 음식은 일반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이미지입니다. B급의 B가 가지는 의미도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Brand 의 머릿말 B를 따온 것으로 B급은 브랜드급, 즉 가격은 싸지만 비싼 브랜드 음식점만큼 맛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저렴하고 서민적이면서 맛있는 음식이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상업적인 이미지로 퇴색된 듯 하지만 매년 새로운 음식들이 경연을 통해 선보이므로 가성비 좋은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