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반한 한국 여자에게 고백한 일본인 친구

제가 일본어 학교를 다닐 무렵,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일본인 친구가 있습니다. 야마다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나라'의 부모님 댁에서 오사카의 회사까지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이었죠. 일본에서 나름 괜찮은 대학교를 졸업했고 중견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어를 너무 잘 한다는 것이었죠.

덕분에 아직은 일본어를 거의 모르는 제게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어 주었고, 제 일본어 실력이 늘 때까지 한동안은 계속 한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일본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한 야마다는 덩치에 비해 술을 좋아해서 자주 술자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느날 제가 한국어를 어떻게 이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야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영국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던 야마다는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고, 다양한 외국 기업과 거래하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면서 다른 외국어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당시 회사의 거래처 중 한국회사도 다수 있었고, 마침 일본에서의 한류붐 등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야마다는 한국어 공부를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야마다는 한국어 공부보다는 일본인 유학생, 한국인 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술자리에 더 열중했고, 그러면서 자연히 한국의 술문화와 나쁜 말들을 먼저 익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방탕한(?) 한국 유학생활을 하던 야마다는 어느날, 대학교 내의 한 모임에서 첫 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운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날 마신 술이 확 깰 정도로 예뻤다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어떻게든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서투른 한국어 실력으로는 그녀에게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모임에서 가끔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야마다는 한가지 결심을 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 한국어를 공부하자. 그리고 유창한 한국어로 그녀에게 고백을 하자'

이렇게 결심한 야마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던 술도 모두 단념하고 미친듯이 한국어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야마다는 그녀를 찾아가 대뜸 사랑고백을 했습니다. 꽤나 유창한 한국어로 말이죠. 그러나 그녀는 야마다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대화해 보지도 않은 녀석이 대뜸 고백을 하는데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조그만 녀석의 하는 짓이 귀여웠는지 친구로 지내자는 제안을 한 그녀와 조금씩 친분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야마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친구들과 단체로 여행도 다니면서 말이죠.

친구로써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야마다는 다시 그녀에게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다시 거절하는 그녀. 그렇게 서너번의 고백 끝에 결국 그녀는 야마다의 마음을 받아 줍니다. 그녀만 바라보는 일편단심, 오로지 그녀에게 고백하기 위해,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 공부에 열심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린 걸까요? 그렇게 야마다는 첫 눈에 반한 아름다운 한국 여성과의 교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야마다에게 한국어를 잘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죽도록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한국어가 유창해 졌다는 애기를 이렇게 소설처럼 들려 주더군요. 

한국 유학생활이 끝나고 야마다가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둘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야마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 저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한두달에 한번씩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만나고 있다는데 마침 다음번에는 여자친구가 일본으로 온다며 괜찮으면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합니다. 어떤 여성이길래 한눈에 반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드디어 야마다의 그녀가 일본으로 왔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그녀를 본 순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야마다랑 너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인데요, 정말이지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여성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죽기살기로 공부한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되더군요.

160cm 조금 넘는 정도의 키에 중학생처럼 왜소한 체구의 일본인 야마다는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인기있는 미남이나 훈남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남성에게나 인기있을 법한 여성이 마음을 허락하고 교제를 하는 것을 보며, 남녀의 사랑에는 역시 외모가 전부가 아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둘 다 아직은 젊은 나이였고, 각자의 미래를 위해 야마다는 다시 대만으로, 그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조금씩 멀어지다 안타깝게도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소식은 더이상 들을 수 없었지만, 그 후 야마다는 대만에서 새로운 대만 여자친구를 만났고, 지금은 한국어보다 중국어를 더 잘합니다. (이 자식 상습범 아냐? ㅋ)

수년간의 대만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야마다는 결국 대만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습니다. 저도 경험이 있지만 장거리 연애는 쉬운 일이 아니죠.

어쨌든,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과감히 떠날 수 있었던 야마다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갑자기 생각이 난 오랜 친구 이야기를 글로 썼더니 보고 싶네요. 사는 곳이 멀어서 자주 못 만났는데 조만간 야마다와 한번 뭉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