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한국의 KT와 같이 회선 사업을 하는 곳이 NTT라는 회사입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쓰는 고정전화와 인터넷은 물론 NTT docomo라는 휴대전화 서비스까지 일본 통신시장 최대규모의 회사입니다. 휴대전화 부문에서는 NTT docomo, Softbank, AU 의 3강 구도이나 역시 docomo의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으며, 고정전화와 인터넷은 NTT가 거의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NTT 인터넷 및 전화요금을 별도의 공사나 회선 변경없이 간단한 계약서 한장으로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업내용의 회사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최근 관련 업체의 직원에게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명에 앞서 일본의 인터넷 요금제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NTT에서 회선사업을 하고 있지만, 중간에 프로바이더라는 회사가 영업 및 고객관리를 담당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인터넷 계약시 NTT와의 계약과 더불어 원하는 프로바이더와의 계약도 필요합니다. 요금의 청구는 대부분 합산 청구가 되지만 내역을 살펴보면 인터넷 사용료에 프로바이더 이용료가 더해진 금액이 청구되는 형태입니다. 맨션타입, 패밀리타입 등 회선의 종류에 따라서 기본 인터넷 이용료가 결정되며 맨션타입의 경우 5000엔 미만, 단독주택의 경우 5000엔을 훌쩍 넘어갑니다.




그런데 NTT가 거의 독과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을 때 AU라는 통신회사에서 eo光(이오히카리)라는 상품을 시장에 출시합니다. 단독주택의 경우 인터넷, 전화, 인터넷티비 3가지 서비스를 5천엔 중반의 가격에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넷만 사용할 시에는 3천엔 초반대 가격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맨션의 경우 인터넷만 신청가능한데 요금이 3천엔이 채 되지 않습니다. 물론 프로바이더 요금 포함입니다. 공식적인 인터넷 공사비와 가입비도 NTT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합니다. 인터넷의 품질이나 안정성의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요금에 있어서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사용가능한 지역이 많지 않았으니 점점 지역을 넓히며 점유율을 확보해 나갑니다. 



이렇게 파격적인 가격과 서비스로 점유율을 높여가는 eo光를 보며 NTT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미 더이상 공격적인 영업조직이 필요없을 만큼 점유율을 차지한 NTT는 이전부터 회선의 유지보수 등 관리에만 치중하면 되는 입장이었기에 운영에 드는 비용을 삭감하고 이용요금을 인하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경쟁업체 수준으로 가격을 인하하면 독과점 기업의 횡포가 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미 계약되어 사용하고 있는 계약자의 요금을 내리는 것도 어렵지만 신규가입자의 요금을 인하하면 기존 계약자와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기므로 요금정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하에 새로운 사업이 탄생하게 됩니다. 신규로 인터넷 가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계약자를 대상으로 보다 저렴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인데, 기존 계약의 해지 없이 간단한 프로바이더 변경 계약서 한장으로 완료되며 경우에 따라 1000엔~2000엔 정도 요금이 저렴해 질 수 있습니다. 기존의 프로바이더 업체가 아닌 신규 프로바이드 업체가 프로바이드 요금 및 인터넷 회선사용료 마진을 줄여서 만들어진 사업모델로, NTT입장에서는 독과점 횡포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회선사용자의 이탈을 막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다 저렴하게 NTT회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프로바이더 변경 계약 후에는 기존 프로바이더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데, 최근 이 부분에서 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이 지인의 사무실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분의 사무실은 NTT회선에 OCN이라는 프로바이더 계약으로 인터넷을 사용중이었는데, 두달 전에 이용요금을 싸게 해주겠다며 찾아온 영업사원에게 프로바이더 변경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제가 사무실을 방문해 있을때 다른 프로바이더 업체에서 영업차 방문했으며, 최근 변경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계약서와 고지서를 보여주었더니 무언가 확인할게 있다며 컴퓨터를 잠깐 쓰자고 하더니 잠시 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확인해 본 결과 프로바이더는 기존에 계약되었던 OCN으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청구서에는 새로 계약한 회사의 프로바이더 요금이 청구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보통 새로이 계약을 하고나면 새로 계약된 프로바이더로 설정이 변경이 되고, 기존의 프로바이더에는 별도 연락을 하여 해지 신청을 해야하는데 해지 신청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프로바이더 요금이 청구가 됩니다. 그런데 이 곳의 경우는 프로바이더는 변경되어 있지 않고 기존의 OCN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새로 계약한 곳에서는 청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칫 OCN과의 계약을 해지할 경우 프로바이더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고, 그러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현재 상황만 보면 이 회사에서 프로바이드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은채 요금을 받아가고 있는 것이고, 이를 모르고 기존 OCN과의 계약을 해지했다면 인터넷이 끊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며, 양쪽 프로바이더에 이중으로 요금을 내고 있는 중입니다. 영업하러 오신 분이 자세히 알아봐 주시고 설명도 잘 해주셔서 새로 계약한 회사에 연락을 하여 문의를 하였으나 고객센터에서는 계약에 관련된 내용은 담당 영업사원에게 연락하라는 답변을 듣고 영업사원에게 수일내에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이중청구가 되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업무상 착오일 수도 있고, 아직은 단정지을 수 없지만 실제 프로바이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요금을 받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기행위이므로 영업사원의 설명 여하에 따라 대응이 달라질 듯 합니다.


일본에서 사무실이나 가게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특히나 이런 저런 영업사원들의 방문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과 같은 경우를 참고로 하여 어떤 경우에라도 계약을 진행하기전에는 충분히 검토하고 잘 알아본 후에 해야 하겠습니다. 한번 도장을 찍으면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서는 정말정말 신중해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꼼꼼히 읽어보시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꼭 물어보고 진행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특히나 일본에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인 우리가 계약서의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매우 중요한 계약을 할 경우 주변의 일본인 지인이나 법무사, 변호사 등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