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일본에서 8년간 장사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특히 장사하시는 다른 사장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장단점을 보며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는데요, 제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것은 주로 중국인과 일본인 사장들로 역시 중국과 일본이 장사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뛰어난 민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장 개개인의 역량도 있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시스템이나 인재관리를 특히 많이 배우게 되는데, 역시 잘되는 집은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고,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많이 깨닿게 되었죠.


그 중에서도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으로, 제가 일본에서 장사를 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은, 내게 돈을 벌어주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직원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직원에게 무조건 잘 해줘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하며, 직원을 성장시킬 수 있고, 능력있는 직원들이 계속 내 곁에서 일해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장사를 그만뒀지만 당시 저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 중에는 불러만 주면 언제든 달려가겠다고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업종이 바뀐 지금도 제 곁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 친구도 있어서 경영자로써 아주 못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합니다.


그런데 최근 심기가 조금 불편해지는 사건이 있어서 글을 적어봅니다.


한국에 모기업을 둔 음식점이 일본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의 점장과 부점장이 모두 과거 제 밑에서 일하던 녀석들이더군요. 점장인 녀석은 예전에 스스로 창업하는 것이 목표라며 제게 일을 배우고 싶다고 들어온 녀석이었는데, 창업을 생각한다는 녀석이 열심히 할 생각은 않고 꾀를 부리고 대충 하려하면서도 제게 이것저것 가르쳐 달라고 염치없는 말을 하는 녀석이었죠. 반면 부점장인 녀석은 원래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서 제 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하다가 직원이 되었죠. 한번도 안해본 일임에도 의욕이 넘치고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가 좋아서 제가 제대로 가르친 녀석입니다. 


이 둘 사이에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점장인녀석이 직원, 부점장인 녀석이 아르바이트로 제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 잠깐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직원이 아르바이트에게 핀잔을 줬다고 합니다.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냥 대충 해도 돼"


직원이 아르바이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니 평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 안봐도 뻔한거죠.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친한 손님들은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에 대한 평가를 가감없이 해주기 때문에 저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구요. 결국 이 직원은 그만뒀고,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녀석은 제가 장사를 그만둘 때까지 열심히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제가 잠시 휴식기를 갖는 동안 이 녀석이 다시금 취직을 한 곳에 지금의 점장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점장이 된 것도 일을 열심히 잘 해서가 아니라, 윗사람들이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고 하는데, 점장이 되어서 뭔가 좀 변했으려나 했는데 여전히 열심히 할 생각도 없이 점장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일을 못한다고 하네요.


본사가 한국에 있고 점장이 모두 관리하고 보고하는 시스템이라 일본에서는 점장이 왕인 셈인데. 본사에서 몇달에 한번씩 오기는 하지만 형식적이고, 본사와의 소통은 점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점장은 얼마든지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거죠.


본사에 자본력이 있어서인지 처음 시작은 굉장히 크게 했는데, 매출이 줄면서 점장의 제안으로 가게규모를 축소하는 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규모가 작아지니 고정비는 줄었지만 단체손님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외형적은 매출은 오히려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됩니다.


본사에서는 수익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점장에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했는데, 결국 얼마전 본사에서 사람이 다녀갔다고 하네요. 그 때 점장이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사 사람이 돌아간 후 갑자기 부점장인 녀석에게 이달 말까지 일하고 그만두라고 했다는군요.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하필 왜 부점장을 콕 찍었을까요?


지금이 12월 중순인데 월말까지 하고 그만두라고 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인데, 본사 사람들이 정말 사람보는 눈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라면 점장을 짜르고 부점장을 점장 자리에 앉힐텐데 말이죠.


점장이 걱정만 하고 전혀 신경쓰지 않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부점장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저에게 자주 상담을 했었고, 점장권한의 운영에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일들은 제가 직접 가르치고 함께 일해봤기 때문에 보지않아도 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둘은 일단 일에 대한 마인드가 틀린데, 점장이 가게를 축소한다고 했을 때 가장 답답해 했던 것도 부점장이었죠. 어떻게 해서든 더 잘되도록 노력은 해보지도 않고 규모를 줄여서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리더로써의 자격 상실입니다. 그러면서도 본사에 잘보여서 자리보전이나 하려하는 점장에게 기대할만한 것이 별로 없죠. 가게를 차려놓고 손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누가 못할까요? 자기 돈으로 차린 가게가 아니라고 자기 일도 제대로 안하면서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가게를 죽게 만듭니다.


부점장이 뭔가를 제안하거나 추진하려고 하면 점장이 움직일 생각이나 의욕도 없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옆에서 점장님~ 이러면서 비위 맞춰주는 애들을 더 챙기는 점장을 보면 일할 맛이 떨어지죠. 그런 점장에게 욕하고 대들면서 그만둔 직원도 있다고 하니 그 능력이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의욕적이고 재미있게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점장은 어차피 오래 일할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에 짤린것에 대해 미련은 없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할려는 녀석은 짤리고, 꾀부리고 농땡이 치는 사람들은 계속 일한다는게 기분이 좀 그렇네요. 제가 지금 장사를 다시 시작한다면 제가 없더라도 믿고 점장을 맡겨도 될 정도의 직원은 해고하고, 절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녀석을 점장에 두다니 본사의 관리능력이 아주 형편없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습니다.


주변에서도 드물지 않게 보는 일이긴 한데, 관계성에 의존한 인사관리는 한국인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일본지점을 관리하면서 점장 한사람의 말만 듣고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것도 사실 납득이 가지 않네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릇이 되지 않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는다고 반드시 그릇이 커지지는 않습니다. 리더의 그릇이 크지 못하면 좋은 인재들을 다 담을 수가 없죠. 그래서 사람을 잘 써야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금의 점장은 가게을 운영하거나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그릇이 못됩니다. 그릇이 되었다면 부점장이 저에게 상담을 자주 하지도 않았겠죠. 이미 매출이 많이 줄었는데 그나마 능력있는 직원까지 내보내고 점장 비위나 맞추는 직원만 남았으니 아마도 그 가게는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누구의 탓을 할 것도 없이 사람의 깜냥을 몰라보는 본사가 그 책임을 지게 되겠죠.


현재 한국에서 일본으로 투자문의가 몇 건 있는데, 그 중에 괜찮은 조건으로 이번에 짤린 녀석을 점장시켜야 겠습니다. 제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