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도시바 경영악화로 인한 반도체 매각 이슈는 누구도 종점을 예측하지 못한채 인수레이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애플과 폭스콘이 인수전에 참여한다고도 하고 SK의 최태원 회장이 직접 일본으로 향할 정도로 국내기업도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일본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 투자펀드 KKR의 공동 인수가 유력하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도시바 사태를 중심으로 일본식 경영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도시바는 미국의 GE(제너럴 일렉트릭)에 비유할 수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중 하나였습니다. 제너럴 일렉트릭사는 1980-1990년대에 걸쳐 주력 사업이던 가전사업을 매각하고 제조업에서 탈피, 금융 사업과 방송 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여 시가총액 기준 세계 11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도시바 역시 가전사업을 주력으로 성장하였으나 GE와는 달리 잘못된 회계문제, 해외 원자력 사업에서의 막대한 손실 등으로 현재 상장폐지의 위기에까지 몰려 있습니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여 변화를 모색한 결과 생존이 가능했지만 그러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아무리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경영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번 도시바의 경영위기도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바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의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있는 대기업들의 위기는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2009년 3분기에 사상 최대의 7873억엔의 적자를 기록한 샤프는 결국 대만의 홍하이 정밀공업에 매각이 되었으며 한시적으로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을 뿐 머지않아 샤프라는 브랜드는 사라질 예정입니다.


뿐만아니라 히타치 제작소, 소니 등 일본 전통의 대기업들도 오랜 경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샤프의 매각, 도시바는 주력사업인 반도체 사업의 매각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히타치와 소니는 어떻게든 극복은 한 듯 하지만 일본의 제조업을 견인해 온 기업들이 연달아 경영위기에 빠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원인에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와 산업구조가 초래한 위기라고 보는 견해도 있어 이번 도시바의 경영위기를 '일본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일본 내부에서는 일본기업이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 비슷한 경영위기가 연달아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기업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번 사태를 통해 도시바 경영의 문제점을 생각해 봅니다.



웨스팅하우스(WH)의 인수과정은 적절하였는가?

인수과정에서 철저한 실사 및 자산평가가 이루어졌다면 이러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WH가 추친중이던 프로젝트가 가지는 미래의 리스크를 간파하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에 실패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기업의 해외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고액에 인수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하고 결국은 매각하여 손실을 내는 패턴이 많았던 것입니다. 도시바가 WH를 인수한 것은 2006년인데 당시 미쯔비시 중공업과 GE등의 기업들과 경쟁하여 인수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인수금액은 54억 달러이며 2015년까지 원자력 사업을 당시의 3배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WH는 이미 4기의 신규 원전사업을 진행중이었으며 10억달러 이상의 잠재적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도시바측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종합상사 마루베니가 파트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인수 직전에 참여의사를 철회하였고 이를 대신하여 미국 일반 계약자인 쇼그룹(현CB&I)와 제휴하여 20%의 출자를 받았지만, 이 자금은 언제든 철회가 가능한 풋옵션을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쇼그룹이 옵션을 행사하면서 결과적으로 도시바는 WH의 거액 손실을 혼자 떠안는 꼴이 됩니다.


도시바의 WH인수를 진두지휘한 사사키노리오사장은 원작력 운전 플랜트 설계부장, 원자력 사업부장등을 역임한 원자력 전문가로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도시바가 종합가전에서 원전 사업으로 전환을 하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일본의 전력회사가 원전 신설을 동결하고 국내 원전 사업이 궁지에 빠졌을 때, 도시바는 WH를 인수하면서 해외 시장으로의 전략을 구상하였고 그 선두에 선 것이 사사키노리오 사장입니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원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대부분의 기업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이 의심받으며 사업을 축소시켰지만 도시바는 여기에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맙니다.


실사가 적정하게 이루어 졌나?

손실 확대를 왜 방치했을까

도시바가 2016년 10월 이후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WH에 관련된 거액의 손실은 많은 의문을 낳고 있습니다. 이번 거액의 손실은 사실 WH가 아니라 WH의 원전 건설을 담당하고 있는 건설회사 'CB&I 스톤 앤 웹스터'가 안고 있는 손실이며 도시바는 이 회사를 2015년 봄에 인수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적정한 실사가 이루어 졌는지도 의문이지만 인수 후 불과 1년6개월만에 7000억엔이 넘는 거액의 손실이 갑자기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도시바는 감사법인의 적정의견이 없는 상태로 2017년 3월 2016년도 3/4분기 결산발표를 해야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이는 감사를 담당하는 감사법인이 도시바의 설명에 납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법인조차 납득할 수 없는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분식회계의 의혹도 들 수 있지만, 만약 정말 몰랐다면, 이는 경영관리 능력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도시바의 현재 대출금액은 1초3000억엔이 넘는데 메가뱅크와 지방은행 등이 일제히 자금회수의 움직임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정의견이 없이라도 결산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던 도시바. 그러나 어떻게 하더라도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있는 현 상황을 방치한다면 2018년 3월말까지 상장폐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