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일본의 경기가 좋아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주위에 장사나 사업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주요 관광지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작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을 못 느끼겠다고 하시네요.


특히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연말임에도 망년회 예약이 많지 않아서 평달에 비해 오히려 매상이 좋지 못하다고 합니다.


부동산 업자의 말로는 경기가 썩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중국 등 외국인 자본의 유입 때문인지 부동산 가격만 오르고 있다고 하고, 세무사는 최근 창업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요즘은 정말 관광객이 일본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광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고, 여기저기 호텔, 면세점 등의 공사가 한창이네요.



각설하고, 며칠 전 오랜만에 여행사를 하고 있는 사장님께 다녀왔습니다. 다른 일때문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지만 저도 관여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제가 한동안 뜸했던 사이에 사무실 이전을 고려하고 계셨는데 마침 제가 와서 잘됬다며 의논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주고객층이 있는 지역과 약간의 거리가 있다는 점과, 인원에 비해 사무실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죠.


여러모로 의논을 하다가 제가 내린 결론은 이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고객들과의 거리는 사실 이전을 하더라도 도보 20분 정도라 이동수단에 따라 신경쓸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는 판단이었고, 그 외에 신규고객 확보를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죠. 


사실 사무실이 과하게 크고 그에 따른 고정비도 만만치 않지만 같은 조건에 이만한 사무실을 얻기도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잘 얻은 사무실입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같은 곳에서 영업을 해왔기에 이전을 한다면, 기존 고객에게 공지도 해야하고 등기, 명함, 광고 등 모든 것을 수정해야 하므로 비용도 만만치 않게 발생합니다. 특히 일본은 이사하다 거지된다는 '히코시빈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사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단지 비용을 줄이고자 이전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건물주에게 사무실을 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한 모양이더군요. 일본은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몇 개월전에 미리 말을 해줘야 하거든요. 일단 건물주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건물주가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전을 하지 않는 것이고 사장님도 납득을 하셨기에, 이왕 건물주가 오기로 했으니 잘 이야기 해서 차라리 임대료를 깍아달라고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사무실로 찾아왔더니, 임대료를 30% 가량 깍아주셨다고 하는군요. ㅎㅎㅎ


이야기를 들어보니 임대료 할인은 건물주가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하네요. 오랜 임대기간동안 지켜보면서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봤기에 무슨 사정으로 이전하려는지는 모르지만 혹시 비용문제라면 임대료를 내려주겠다고 했답니다. 사실 처음 여행업을 시작했을 당시 수익보다 지출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한 때 수천만원가량 월세가 체납된 적이 있었는데,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모두 변제하는 것을 보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그 이후로는 한번도 임대료를 체납한 적 없구요.


이런 경험은 저도 있었는데, 과거 제가 장사를 할 때 리먼쇼크로 전체적인 불황이 왔고, 가끔씩 저희 가게를 찾아오던 건물주가 요즘 장사는 어떠냐며 걱정을 해주곤 했었는데, 손님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했더니 힘들면 월세를 내려주겠다며 무려 10만엔을 깍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조금씩 회복하여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지만 월세를 다시 올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건강문제로 가게를 팔았는데, 새로운 경영자에게는 처음부터 그렇게 깍아줄 수는 없다며 원래의 임대료를 그대로 받았죠. 저에게 인수받을 때만해도 꽤 흑자인 가게였는데 점점 경영상태가 안좋아지면서 월세를 할인해 달라는 요청을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건물주가 거절을 했다며 제가 한번 부탁해봐 달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어쩔수 없이 제가 건물주에게 전화를 했더니 단호하게 말하기를, 새로 들어온 사람은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가 않다. 한번씩 가보면 항상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거나 담배나 피고 있어 의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는 도와줄 마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줄 이유는 없다라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중국음식점 사장님은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인데, 한국에서 부모님이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겪은 고초를 자주 말씀하십니다. 연세가 있는 분이라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과거의 한국은 조금만 장사가 잘되면 월세를 올려 달라고 해서 몇 번이나 점포를 옮겼고, 짱깨짱깨라며 무시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며 부모님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서 장사를 시작했고 성공하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곁을 떠나 홀로 일본으로 오신 이 분도 벌써 20년째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며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고 계시죠. 이분의 가게도 주인이 월세를 깍아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 계신 다른 분들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제 주위분들 중에는 계약갱신을 빌미로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요구로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건물주횡포, 임대차보호법 등 예전 한국의 뉴스를 보면, 권리금에 설비, 인테리어비용까지 엄청난 돈을 들였음에도 보증금이나 임대료 인상때문에 손해를 보고 문을 닫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더군요. 


그런면에서 권리금도 없고, 임대료나 보증금 인상부담도 없는 일본이 장사를 하기에는 더 나은 환경이 아닌가 싶네요. 게다가 운 좋게 착한 건물주 만나면 임대료 할인도 해주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