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일본에 살면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었고, 잠깐의 만남으로 끝나거나 지금껏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유학 대신 일본유학을 선택했던 저는 여느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문제나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어학교 시절에는 장난삼아 한국 유학생들과 대한애국회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거의 술 마시는 모임이었지만요 ㅎㅎ


그러나 오래 살면서 직접 체험한 일본은, 한국에서 제가 배우고 알던 일본과는 사뭇 달랐고, 동시에 일본인에 대한 오해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한국에서 바라볼 때의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그 속에서 마주치는 일본인이라는 개인은 한국인인 저를 배척하기 보다는,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써 받아 들이며, 정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믿어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 오히려 많은 실망과 분노를 느꼈는데, 지금껏 제가 일본에 살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일본인과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에게는 피해를 당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 중에도 일부러 한국인을 멀리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일본에 있는 한국인은 절대 믿지 마라, 한국인 등에 칼을 꽂는 것은 한국인이다 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끼리의 크고 작은 분쟁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들만 비교해 보면, 한국인은 친해질 수록 관계성에 의존해 뭔가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친해질 수록 제게 더 잘해줍니다. 일본에 사는 동안 제가 가장 잘 해줬던 이들은 한국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제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저를 믿고 따르는 몇 명의 한국인 동생들 외에는 일본인과 중국인밖에 없더군요.  


그 중에서 오늘은 벌써 8년째 인연을 맻고 있는 일본인 형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니버셜스튜디오, 야마다덴키, 빅카메라 등의 대기업은 물론 전국 수백개의 이자카야와 찜질방, 게스트하우스 등의 공사실적을 가지고 있는 오사카에서는 세 손가락안에 꼽히는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 분은 태어난 곳에서 계속 살아오면서 그 지역의 유지같은 존재입니다. 주위에 지인들이 워낙 많아서 해당 지역에 조그만 점포를 얻어서 마치 사랑방처럼 이자카야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저와는 벌써 8년 이상의 인연을 맺고 있는 이 형님은 제게 일본인들을 소개시켜 줄 때면 항상 그 사람의 특징을 이야기 해줍니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너무 깊이 사귀지 마라 등의 조언을 해주는데, 거꾸로 저를 일본인들에게 소개할 때는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말을 꼭 하면서 항상 굉장히 좋게 소개를 해 줍니다. 덕분에 경계가 심한 일본인들과 보다 쉽게 친해질 수 있었죠.


언제나 형님이 운영하는 가게를 가면 손님의 대부분이 저를 반길 정도로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봄이면 다함께 벗꽃놀이에 바베큐도 하고, 여름이면 유카타를 차려 입고 마츠리에 가거나 바닷가를 함께 가기도 하죠. 생일이면 모여서 파티도 하는데, 한국인이 거의 없는 이 동네에서 저는 일본인들 사이에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수십명이 대화하는 단톡방에서도 유일하게 저만 한국인이죠.



작년 누군가의 생일입니다. 고등학생, 대학생, 회사원,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개인사업자, 회사 대표, 건설 노동자 등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축하를 해 줍니다. 


일본인은 정이 없다. 일본인과 친해지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느낀 일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거창한 생일파티나 선물은 아니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함께 모여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축하를 하고, 서로 부담없을 정도의 정말 작은 선물이지만 기쁘게 주고 받습니다. 잠시 얼굴만 내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먹은 것은 각자 계산하지만 오히려 서로 부담이 안되서 모이기가 더 좋은 것도 같습니다. 확실히 한국인에 비해 깊은 정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친한 사람일 수록 거리를 두라는 말 처럼 적당한 친분이 오히려 좋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 일본인들과 많은 대화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는데,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것과 같은 혐한이나 반한 감정을 가진 일본인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역사나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케이팝이나 아이돌, 한국여행이나 한국음식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죠. 사진 속의 고등학생도 케이팝을 틀어놓고 노래나 춤을 따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년 이상의 남자들 중에는 한국어를 배우러 다닐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소위 혐한감정을 가진 우익 성향의 분들도 많습니다. 이 사진 속에도 골수 우익이 두 명 있는데,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인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됬다고 합니다. 


한국을 매우 싫어 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골수 우익인 분들도 저와 제가 소개한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한국인이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많은 대화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한국인, 일본인이라서 좋고 싫고가 아니라, 어느 나라든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나쁜 사람도 있다는 것이고,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싫고 좋음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은 제게, 만에 하나 한일간 전쟁이 난다면 한국인으로써 일본인으로써 각자의 조국을 위해 싸워야 겠지만, 혹시 전쟁터에서 서로를 발견하면 최소한 우리끼리는 총부리를 다른 곳으로 겨누자고 합니다. 그리고는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친구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정치적인 문제, 역사적인 문제로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일본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익단체는 그 정도가 심하죠. 하지만, 혐한을 외치던 우익 성향의 사람들도 한국에 대해 오해했다. 한국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과거의 감정으로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기만 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육으로 한국을 오해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편을 들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치한 감정싸움에 희열을 느끼기보다는, 피해자였던 우리지만 먼저 넓은 아량으로 일본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 주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서로 등돌리는 것보다는 더욱 발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혐한 감정을 가진 일본인도 물론 많지만 한류를 통해 한국에 호감을 가지는 일본인도 많고, 지식인들 중에는 역사문제에 있어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도 다수 있습니다. (관련글 : 혼다상의 사과) 또한 반일 감정이 심한 한국이지만, 한국으로 여행가는 일본인보다 일본으로 여행가는 한국인이 더 많은게 현실이죠. 국가나 정치적으로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문제일지 몰라도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국민들은 이미 그러한 감정이 많이 옅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정치, 역사 문제는 개개인의 감정이나 분쟁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으나, 양국간 국민들이 서로 교류하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아래에서부터의 화해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형님의 가게는 작년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가게가 되었습니다. 본업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과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장사에서는 꽤 고전을 하고 있었고, 폐업을 할까 말까의 기로에 있을 무렵 저에게 상담을 하러 왔죠. 본업의 벌이로 메우고는 있지만 약간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었는데, 지인들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을 없애기에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상담 끝에 제가 운영을 대행하기로 하고 약 반년을 맡아서 해 드렸습니다. 여러가지 시도도 해보고 주변의 상권도 살펴보면서 가게의 장단점을 파악한 후 운용할 수 있는 인력 등을 고려하여 저는 완전히 새롭게 바꿀 것을 제안했죠. 약간의 인테리어 수정을 통해 다양한 안주를 팔던 이자카야에서 야키토리 전문점으로 변신을 시킨 겁니다.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야키토리는 오사카에서 매우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메뉴이지만 대형 프렌차이즈 두 곳을 제외하면 해당 상권에는 경쟁력 있는 야키토리 전문점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야키토리 전문점으로 변신을 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지난 달에 2호점을 오픈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2호점 오픈 때 가보지도 못했는데, 조만간 한번 가봐야 겠네요. 적자였던 가게가 성공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1호점을 운영할 때 가지고 있던 열쇠는 아직도 제게 있습니다. 가게 운영권을 다시 넘겨 주면서 열쇠를 돌려주려 했지만,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없을 때 제가 갈 일은 없지만, 그 만큼 저를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로 느껴져서 고마웠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인 제게 가게 운영에 관한 상담을 하고 제 의견에 따라 운영방식을 바꾼 것은 꽤 깊은 신뢰가 없다면 힘든 일이죠.


일본인은 경계가 심하고 폐쇄적인 경향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한 번 신뢰하게 되면 끝까지 믿어주는 것 또한 일본인입니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한일간의 묶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서로 믿고 협력해 나가는 사이 좋은 이웃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