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1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과 다투거나 마찰이 있었던 일을 꼽으라면 딱 두번이 있다. 물론 경찰이 출동할 만큼 크게 싸우거나 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워낙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별일 아니지만 사건의 발단과 결말이 반전이라 듣는 사람들이 신기해 한다. 


일본에서는 싸우는 광경을 거의 목격할 수 없고, 어쩌다 가끔 택시 등 차량 운전수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지만 절대 손이 나가지는 않고 말로만 싸운다. 어떤 싸움현장에서도 먼저 손을 대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일본이라, 어지간해서는 손이 나가는 일이 잘 없는데, 계속 입싸움만 하다가 경찰이 오는 순간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거칠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말려줄 사람이 있으니 안심하고 하고싶은 말 다 하는 듯하다. 그래서 불구경과 함께 제일 재미있다고 하는 그 싸움구경이 전혀 재미없는 곳도 바로 일본이다.



어쨌든 어지간해서는 시비붙을 일도 없고 한국인이라 차별이나 무시같은 것도 겪어보지 못했지만 어이없게 시비가 붙은 적이 두번 있다. 그 중 한번은 일본인이 아닌 재일교포가 만취한 사건이므로 제외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10년동안 단 두번 겪은 시비 중 일본인과의 시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본에서 처음 회사를 설립하면서 사무실에 필요한 비품 등을 사기위해 집근처에 있는 도큐핸즈라는 매장에 가는 길이었다. 집 근처라고는 하지만 신사이바시라는 번화가쪽에 있어서 근처로 가면서 행인들이 많아졌다. 주말이라 그런지 꽤나 사람이 많았는데, 자전거를 타고가던 나는 거의 도착할 즈음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려 인도를 걷고 있었다.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는데, 앞에서 어떤 양아치처럼 생긴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면서 걸어오다 내 자전거와 부딪혔다.


앞도 안보며 걸어온 상대방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래도 아플것 같아서 괜찮냐고 말하려는 순간 


@$#@^$&%*^!5&$%@*&^%%$##@@!!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고 험한 오사카 사투리(영화나 드라마에서 야쿠자들이 쓰는 말투)로 나에게 엄청 화를 내는 것이었다. 순간 조금 당황했지만 말 뜻도 다 모르겠고 못 들은 셈 치자 싶은 생각에 괜찮냐고 했더니 또 뭔가 입에서 험한 말들이 튀어 나온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욕먹고 있는 것 같아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당시 회사 설립과 동시에 경영관리비자를 신청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로도 경찰 신세를 지면 비자취득에 굉장히 불리하므로 어쩔 수 없이 꾹 참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양아치가 몇 마디 더 뱉으며 나를 지나가면서 자전거 뒷바퀴를 발로 찍어 차버린 것이다. 자전거는 쓰러졌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순간 화도 났지만 너무 챙피했다. 100% 내가 잘못했다면 어떻게라도 참았을 수도 있겠지만 핸드폰만 쳐다보고 앞을 안보고 온 사람이 그리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순간 머리 속으로 온갖 생각과 계산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결국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그 사람을 이미 쫒아가고 있다.


얼마 안되는 거리였지만 따라잡는 동안에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몇 발자국 안가서 따라잡은 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후 그대로 목을 꽉 움켜쥐고는 이렇게 말했다.


좀 전에 뭐라 그랬니?? 너무 빨라서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 다시 한번 천천해 애기해 줄래? (물론 이렇게 부드럽게 애기하진 않았다.)


그랬더니 나에게 목을 졸린 채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쓰..쓰..쓰....쓰미마셍~~~ 쓰미마셍~~~~


미안하다며 용서해 달라고 한다. 그 말에 맥이 탁 빠졌다.

좀 세게 나오면 같이 맞붙을 생각으로 손을 대긴 했지만 좀전까지의 기세는 어디가고 한 순간에 쫄보가 되어 사과하는 꼴이란....



상대할 가치도 없다 싶어 짧게 몇 마디 하고 돌려보내긴 했지만, 정말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일본인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실제로 겪어보니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싸움 구경할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일본인끼리의 싸움보다는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의 싸움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비자를 받아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주의해야 하는데, 폭행으로 경찰서 기록에 남으면 비자 갱신시 굉장히 불리해진다. 


그렇다고 억울해도 참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대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일본이고 애매한 상황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경향이 많은 일본 경찰이므로 가급적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왠만해서는 일본인과 시비가 붙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므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