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일본에서 거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적에 맞는 재류자격 즉, 비자가 필요하다. 학업, 취업, 사업, 결혼 등에 따라 비자의 종류도 달라지고 취득하는 방법도 다르다. 이러한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입국관리국에 신청을 해야하는데, 본인이 직접 신청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없는 사람, 혹은 편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행정서사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학생비자나 취업비자의 경우는 학교나 회사에서 비자신청까지 해 주는 곳이 많으므로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사업을 위한 경영관리비자, 결혼비자, 정주권, 영주권 등은 행정서사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영주권을 취득하기 전의 모든 비자는 기한이 되면 연장을 위해 갱신 신청을 해야하는데, 이 때도 역시 행정서사를 이용한다.


일본어에 자신이 있고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데 있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직접 신청하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잘 몰라서, 나중에는 바쁘고 귀찮아서 의뢰를 하곤 했다. 


우선 행정서사란 

행정서사법에 근거하는 국가자격으로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 및 권리의무, 사실증명에 관한 서류의 작성 및 제출 등의 대행, 작성에 필요한 상담 등에 응하는 직업이다. 


여기에서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의 작성과 제출, 작성에 필요한 상담에 해당하는 업무 중에 비자 시청과 관련된 일이 포함되므로 행정서사들이 비자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서사에게 의뢰를 할 때에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비용을 주고 맡기면 여러모로 편하기는 하지만 행정서사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은 물론 나도 행정서사 때문에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


일본어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설립하여 경영관리비자(당시에는 투자경영비자)를 신청하려고 행정서사를 소개받았는데, 한국인이었다. 당시 일본어 학교를 졸업은 했지만 아직은 일본어가 유창하지는 못했으므로 일본인 행정서사보다는 한국인 행정서사가 대화하기에 편했다. 굉장히 친절하게 잘 대응해 주셨고 어렵지 않게 경영관리 비자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비자를 갱신할 때가 되어 행정서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연결이 안되는 것이다. 사무실, 휴대폰 어디로도 연결이 안된다. 며칠동안 전혀 연락이 안되자 사무실로 직접 찾아갔는데 당황스럽게도 간판은 온데간데 없고 사무실은 텅 빈채 잠겨져 있었다. 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주고, 갱신할 때를 대비해 관련 서류를 보관, 관리해 주고 있던 행정서사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꽤 심각한 문제인데 비자를 갱신할 때 보다는 비자 종류가 변경될 때 최초 서류가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경영관리비자에서 영주권으로, 혹은 취업비자에서 경영관리비자 등으로 비자가 변경될 경우, 기존에 어떤 비자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처음 신청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으로 해당 비자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인적사항, 가족관계, 이력 등의 기본 정보가 기존 비자 신청시 제출했던 서류와 완벽히 일치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런 서류를 관리하고 있던 행정서사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급히 다른 행정서사를 수배해서 상담을 했고, 다행히 비자 갱신에는 큰 영향이 없었기에 무사히 비자가 연장되었지만 나중을 위해 최초 제출한 이력과 똑같은 자료를 준비해 놓아야만 했다. 새로운 행정서사가 입국관리소에서 기 제출한 서류에 대한 사본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다고 말은 했지만 비자갱신 후에는 까먹었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로 떼어다 주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실제로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다. 


내가 경영관리비자 신청을 할 때도 당연히 유학비자를 신청할 때와 같은 정보여야 하므로 유학비자 신청시 작성한 서류를 토대로 작성을 했던 기억이 났다.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에도 다니던 일본어 학교에서 해당 서류를 일정기간 보관한다는 규정이 있었고 학생이 원하면 원본자료를 카피해 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서류작성을 했던 것이다. 이미 졸업한 학교지만 당장 전화를 걸었고 아직 보관중이며 카피가 가능하다고 하여 자료를 받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인적사항과 이력 등에 대한 자료는 보충이 되었지만, 회사와 관련된 서류 등 행정서사가 관리하고 있던 자료들을 모조리 다시 만들어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수소문한 결과 당시 행정서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폐업하고 한국으로 가는 것은 괜찮은데 적어도 고객들이 불편을 겪지는 않도록 관리하던 서류정도는 넘겨주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책임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해당 사무실을 이용한 수많은 고객들이 나와 비슷한 불편을 겪었음에 틀림이 없다. 


일본에 살면서 행정서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꽤 많이 접하고 경험했는데, 생각보다 비양심적인 행정서사들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몇가지 더 예를 들어 보자.


지금은 불법체류나 가짜 결혼비자 등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비자를 받기 위해 돈을 주고 가짜 결혼을 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는 엄연히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위해 이를 알고도 서류를 꾸며 비자 신청을 해주는 행정서사들이 있었다. 다행히 비자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위장결혼으로 밝혀져 비자발급이 거부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경우 비자심사를 담당하는 입국관리국에서 위장결혼임을 알고도 비자 신청을 한 행정서사에 대한 신용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는 해당 행정서사를 통해 앞으로 비자를 신청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즉, 해당 행정서사가 제출한 서류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며, 심사도 더욱 까다로워져서 비자 승인의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자를 받기 위해서 세금을 납부한 증빙이 필요하기도 한데 이를 위해 가게를 차리라는 둥 일을 크게 벌리는 행정서사의 이야기도 들었다. 수백만엔을 들여서 가게를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자도 못 받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사업을 서포트한다, 부동산 취득을 도와준다고 하는 행정서사들이 가끔씩 보이는데, 솔직히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나 사업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인지. 장사든 부동산이든 기본적인 지식이나 분석은 고사하고 적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서포트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문 분야가 아니고 거기에 시간을 쏟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므로 대부분 친한 부동산 업체와 연계하여 그들이 주는 물건을 소개하고 계약이 성립되면 수수료를 받는 형태이다. 목 좋은 점포, 수익성 좋은 부동산을 찾기 위해 같이 발품을 팔고, 성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같이 아이디어를 내 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단지 그런 것을 미끼로 회사설립, 비자발급, 각종 인허가, 등기 등을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을 생각이겠지만 상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행정서사가 추천해 주는 점포, 부동산 등에 단지 행정서사라는 타이틀만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과연 높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부동산으로 수익을 내든 말든 받을 수 있는 수수료를 이미 챙긴 그들에게 어떤 애프터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하고 단단히 준비한 사업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경험도 없는 일에 서포트를 해 준다는 말은 지나친 오버라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껏 3번 행정서사가 바뀌었다. 두번째 행정서사는 나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다른 사업자에게 내 정보를 공유한 일이 친구의 제보로 들통이 나면서 혼쭐이 났다. 행정서사도 사람이므로 그 중에는 양심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행정서사는 아직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이 외에도 많은 예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몇가지 주의사항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행정서사를 선택할 때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확인하여 실적과 실력이 검증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비자와 관련된 서류는 행정서사 외에 본인도 반드시 복사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행정서사는 단지 행정절차에 대한 상담, 서류작성, 제출 등을 대행해 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외의 일에 대한 상담은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특히 장사, 사업, 부동산 등에 대한 상담은 행정서사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 된다 안된다를 확실하게 말해주는 행정서사가 좋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자신이 하면 어떻게든 될 것처럼 말하고 비용을 받는다.

비자의 경우 잘못되면 그냥 한국으로 가야하는 상황도 생기는데 누가 책임져 줄까?

되면 된다, 안되면 안된다. 확실히 말해주고, 안되는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고 진행해야 한다.


■ 실패할 경우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를 반드시 확인하자. 

비자가 안나와도 사과조차 없이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곳도 있는 반면 비자가 나올 때까지 재신청 비용 무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행정서사에 대해 안 좋게만 이야기 한 것 같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일본에 살면서 겪은 이런 저런 일들로 글을 쓰고 있지만, 진작 나에게 이런 애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덜 고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대해 잘 모를 때는 행정서사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번거롭고 귀찮은 서류작업이나 정해진 행정절차를 대행해 주는 역할일 뿐이다. 일본에서의 장사나 사업, 투자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행정서사에게 모든 상담을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 사업계획을 세우거나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행정서사는 이미 정해져 있는 행정절차와 관련된 상담을 하고 그에 필요한 문서작업 및 행정절차를 대행해 주는 역할이므로 그에 맞게 이용하면 된다. 같은 행정 절차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더하고 뺄 사항이 생기므로 이에 대한 대응은 경험이 풍부한 행정서사를 통하면 시간과 수고를 줄일 수 있다.


비자의 신청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행정서사때문에 몇 번 고생하면서 많은 공부를 해서, 자격증은 없지만 준행정서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자에 대한 지식이 있는 나는 그저 귀찮고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행정서사에게 맡기고 있다. 그러나 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M군의 경우 지금껏 모든 비자에 관한 일을 스스로 해결했고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두 비자 승인을 받았다. 


일본어가 가능하다면 입국관리국에서 비자신청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고 신청서 양식과 필요한 서류 목록 등도 받을 수 있으므로 가이드라인에 따라 필요한 사항을 준비하고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하면 된다. 실제로 행정서사를 통해 영주권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사람이 혼자 재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은 경우도 있다. 비자뿐 아니라 회사의 설립, 각종 인허가 등도 마찬가지로 모든 관공서에서 방법과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본인이 직접 모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괜찮지만 관련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인등의 도움을 받아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신청하는 것은 괜찮지만 대신 해주는 것은 안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 경우는 반드시 행정서사를 통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