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작년부터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친구가 있는데 얼마전 오랜만에 같이 술잔을 기울였다. 이 친구와 알게된 것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형님이 운영하는 이자카야에 놀러 갔다가 전근으로 도쿄에서 오사카로 온 친구라며 소개를 받은 것이 계기로, 형님네 이자카야에 놀러갈 때마다 항상 이 친구가 있어서 자주 이야기하게 되면서 친해졌다.


샤프하고 핸섬하게 생긴 외모에 뿔테안경, 그리고 늘 정장차림의 이 친구는 뭔가 세련된 모습이었다. 사실 항상 혼자 스마트폰으로 게임만 하고 있던 친구라 처음에는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지만, 의외로 이야기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친해지게 되었다.


친구와 술을 먹다 도쿄와 오사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같은 일본인이라도 지역에 따라 느끼는 것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가 오사카에 와서 특히 놀란 점이 몇가지 있다고 하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우선 편의점에서 화들짝 놀란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아르바이트의 지나친 친절때문이라고 한다. 편의점을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직원들이 인사를 꼬박꼬박 잘 하는 것은 도쿄나 오사카나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쿄는 뭔가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데, 오사카는 그보다 한 발짝 더 사람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라고 한다. 게다가 계산을 할 때 거스름돈을 주면서 그냥 손 위에 올려주면 될텐데, 돈을 주는 손 말고 다른 한 손을 내 손 밑에다 대고 거스름돈을 주면서 손을 터치하더라는 것이다. 도쿄에서는 절대 그렇게 주는 법이 없이 그냥 평범하게 주는데, 오사카에서는 두손으로 주면서 밑에 손으로 내 손등을 터치하는 것에 순간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몇 년전까지만 해도 계산을 할 때 손등을 터치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최근에는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그래도 종종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사카의 특징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나름 공손하게 건네려고 두손으로 하는 것 같은데, 손을 터치하는 것은 사실 기분이 안 좋을 때가 가끔 있다. 특히 남자가 터치하면...ㅋ



또 다른 한가지는 음식점에 밥 먹으러 갔을 때이다. 워낙에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혼밥을 잘 하는데, 특히 독신 남녀의 경우 퇴근 후 혼자서 밥을 먹을 때가 많다. 이 친구가 오사카에 처음 와서 여기저기 밥을 먹으러 다녔는데, 어디를 가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건다는 것이다. 혼자서 조용히 밥 먹고 싶은데 자꾸 말을 걸어서 처음에는 굉장히 짜증이 났다고 한다. 주방과 마주하고 있는 바, 카운터 자리가 있는 음식점이 특히 그런데, 그 때문에 아무도 말 걸지 않는 프렌차이즈 음식점을 한동안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사카에서 계속 생활한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에게는 부자연스러웠나 보다. 물어보니 도쿄에서는 굉장히 자주가는 단골이 아닌 이상 그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하긴, 오사카는 처음오는 손님에게도 너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와서 금방 친해지고, 혼자 가더라도 즐겁게 먹고 마시다 올 수 있지만 가끔 귀찮을 때가 있기는 하다. 이 친구도 이제는 적응이 되어서 오사카 어디를 가나 대충 잘 어울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도쿄는 왼쪽 오사카는 오른쪽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위치도 다르다는 등 여러면에서 같은 일본이지만 지역에 따라 특색이 있다는 점은 참으로 재미있는 것 같다.



알고 지내던 일본 여자 고등학생 몇 명이 오디션을 보러 도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다녀와서 하나같이 하는 말이, 오사카에 비해 사람들이 다들 표정이 어둡고 지쳐있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과 같이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서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지쳐보였던 것일까? 내가 도쿄를 갔을 때는 그리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아이들의 눈에 비친 모습이 가장 정확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인의 기질과 그나마 비슷한 일본인이 오사카 사람들이라고들 한다. 타지역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겪어 본 오사카인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굉장히 정도 많고 의리도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확실히 말도 많고 시끄럽기도 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오사카인들은 빨간불일때도 차가 지나다니지 않으면 건너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밥을 먹을 때에도 기본적으로 1/n 로 나눠 내고 1엔짜리 하나까지 계산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분에 따라 시원하게 쏘는 일본인도 꽤나 있다. 그래서인지 오사카에서 일본인과 사귀면서 크게 위화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사카의 생활에 익숙해진 내가 도쿄로 가서 생활하게 된다면, 이번에 만난 일본인 친구처럼 거꾸로 내가 놀라는 부분이 분명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