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친한 동생을 통해 알게 된 한국분이 경영하시는 한국 음식점이 있는데 워낙 음식이 맛있어서 자주 갔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한참을 못 가다가 얼마전 볼 일이 있어 근처로 갔다가 오랜만에 들렀는데, 간판이 바뀌어 일본 이자카야로 바뀌어서 일본인이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상은 하고 있어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입맛에 맞는 단골가게가 없어져서 무척이나 서운했습니다.


사실 이 곳에 처음 갔을 때도 놀랐지만, 여러번 식사하러 가면서도 오픈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가게지만 자칫하면 오래 가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왜 음식이 너무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폐업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까요?


동생을 따라 이 가게에 처음 갔을 때 든 생각은, '왜 이런 곳에 가게를 오픈했을까' 입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최고 번화가에 인접해 있어 굉장히 입지가 좋아 보이지만, 골목길 하나에도 상권이 달라지는데, 특히 이 곳은 유동인구가 너무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근처 지리를 훤히 알고 있는 저도 갈 때마다 장소를 헷갈릴 정도로 주변에 뚜렸한 랜드마크도 없습니다.


또한 1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게의 출입구가 노면을 향해 있지 않고, 건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제일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 띄기도 힘이 듭니다. 건물 규정상 눈에 띄게 큰 입간판 설치도 불가능하여 조그마한 입간판만 건물 입구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도보 5분 거리에 지역 최대 상권의 상점가가 위치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 쪽으로 향하게 할 요소가 아무것도 주변에 없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저라면 월세가 아무리 싸다고 해도 이런 자리는 피하고 싶은 곳에 무슨 용기로 가게를 차리셨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가게가 너무 좁습니다. 일본의 많은 가게들이 카운터만 있는 작은 가게로도 수십년씩 장사를 잘 하는 곳도 물론 있기에 좁은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구조가 나쁘다 보니, 억지로 끼워 넣은 듯 테이블이 놓여 있고 이 마저도 크기가 작습니다. 삼겹살이라도 구우려면 테이블이 좁아서 접시를 겹겹이 쌓아야 할 정도였고, 술잔을 내려놓을 빈 공간을 찾아야 하며, 통로로 사람이 지나 다니려고 하면 앉아 있는 사람이 의자를 당겨줘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굳이 이런 구조의 가게라면 좌석배치를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초기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가게가 워낙 좁고, 오너가 직접 요리를 하셔서 금새 친해질 수 있어서 많은 애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5~6평 남짓한 가게를 오픈하면서 초기 비용이 1000만엔 가까이 들었고, 그 중 대부분이 인테리어 비용으로 지불하셨다고 합니다. 그 애기를 듯고 제가 더 답답해서 성질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테리어 공사비를 지불하거나, 인테리어 업자때문에 굉장히 고생한 분들의 이야기를 꽤 들었지만, 이 분의 경우도 제가 아는 내용 중 넘버3 안에 들어갈 만큼 기가 막히는 공사를 하셨습니다. 퀄리티는 둘째 치더라도 평당 공사비가 말도 안되는 가격인 거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지인과도 인연이 있는 분이었는데, 진작 알았으면 입지와 점포도 봐 드리고, 인테리어 공사도 바가지 쓰지 않게 도와드릴 수 있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메뉴의 가지 수도 그분이 가진 음식 실력에 비해 너무 적었습니다. 이곳의 오너는 요리사에게 요리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궁중요리까지 거의 대부분의 한국음식을 하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곳에서 오래 일하시다 독립하신 분인데 가게가 좁다보니 주방과 냉장고 크기의 제한 때문에 메뉴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의 수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가끔 메뉴에 없는 요리를 주문해도 재료만 있다면 뚝딱 만들어 주셨는데 맛이 고급지고 깔끔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메뉴에 넣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네요.


마케팅이 너무 안된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마케팅에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더라도 일본에서 음식점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최소한의 마케팅 수단도 전혀 이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보다 여건이 좋은 곳도 각종 마케팅 수단을 이용해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도 밖에서는 이 곳이 음식점인지 조차 알기 힘든 곳에서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 외에도 아르바이트 관리부터 많은 부분에 헛점이 보였지만 주제넘게 제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항상 저는 음식만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만, 이제 더 이상 갈수 없게 되어 서운한 마음입니다.


음식점의 기본은 음식이 맛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음식점이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줄 서서 먹는 유명한 맛집이 되기도 하고, 맛은 보통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손님이 넘쳐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언제나 한가한 집인데 우연히 먹으러 갔더니 의외로 맛있는 집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맛있는 음식과 적절한 입지요건은 요식업을 하는데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테리어, 운영시스템, 통계 분석, 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가 접목되면 실패의 확률을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 곳은 사장님께서 너무 오래 요리만 하신 탓인지 사업적인 면이 많이 약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 친구의 아버지도 은행 지점장까지 지내셨지만 퇴직 후 투자, 사업 등 번번히 실패하셨습니다. 은행에서 수많은 기업을 상대하며 대출, 투자 등의 상품을 취급하면서 사업이나 투자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셨는데 실전은 달랐던 겁니다. 주변에 이런 분들이 몇 분 더 계신데, 직장 등 조직내에서 한가지 일만 오래 하신 분들은 직장 내에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지 몰라도, 조직을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면 그 분야에서는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자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하고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경험이 많은 사람을 조력자로 두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뭔가를 시작함에 있어 과감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결단에 충분한 타당성을 부여 할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