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제가 아는 일본인 지인 중에 일본의 메가뱅크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굉장히 박식해서 배울 점도 많은 분이라 종종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분과 자주 만나면서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됐는데요, 음식점에 들어가면 가끔 제가 앉으려는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겁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일이 빈번하자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네요.



저는 직업적인 습관때문인지 어느 곳을 가든 내부가 최대한 시야에 많이 들어오는 자리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입구쪽이 아니라 안쪽 테이블로 안내를 받으면 입구쪽을 바라볼 수 있는 쪽 자리에 앉으려고 하죠. 반대로 입구쪽 테이블이라면 안쪽이 보이는 자리에 앉습니다.


그런데, 안쪽 테이블에서 입구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마다 이 분이 자리를 바꾸자고 하는 겁니다.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저와 비슷하게 직업때문에 생긴 습관(?)이라고 하는 군요. 은행 다니시는 분이 직업때문에 음식점에서 자리를 가려 앉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자세히 물어봤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행이 입사 후 부서이동이 있었는데, 대부계로 발령이 났다고 합니다. 대부계는 돈을 빌려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연체된 대출금에 대한 회수업무도 해야 했는데 이게 정말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진 이후 이런 일이 급증했는데 돈을 갚지 못하자 야반도주하는 사람도 많아서 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 구석구석 안다녀본 곳이 없다고 하네요. 일본의 은행 시스템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당시 이 분이 일할 때에는 은행직원이 연체금을 받아내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사채업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은행이라고 합니다.


은행은 사채업자들에 비해 각종 기관등의 도움을 받아 소재지 파악하기에도 유리해서 어디에 숨어있어도 무조건 찾아낼 수 있다는군요. 찾아가 보면 정말 돈 한푼 나올 구석이 없어보이는 사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받아낸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돈을 빼돌리고 없는 척하는 사람도 많지만, 정말 없어서 갚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자세히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지독할 정도로 받아냈다고 하는군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사람도 많았고 험한 소리도 정말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대부계에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지금은 그런 일을 하지 않지만, 언젠가 과거 자신이 담당했던 연체자로부터 봉변을 당한 이후 그는 가방에 항상 호신용 봉을 가지고 다니게 됐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음식점 등에서는 항상 출입구를 등지지 않고 항상 출입구가 보이는 자리에 앉게 됬다네요. 워낙 지독하게 한 사람들이 많아서 원한을 많이 산거 같다며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불안하다고 합니다.



제가 배우고 알기로도 은행은 정말 무서운 곳입니다. 시민들이 예금한 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은행의 기본 시스템이라, 예금이 없다면 대출업무도 할 수 없는 것이 은행입니다. 결국 우리네 돈으로 이자놀이 하는 것이 은행이고, 대출은 그들의 주된 수익원이 되는 상품입니다. 철저하게 수익을 중시하는 은행이라 결코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는 것도 은행이죠.


하지만 이런 은행이 있기에 대출을 통해서 내집마련도, 사업도 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개인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도 하지만, 제가 아는 누군가처럼 대출받은 돈으로 자신의 유흥에 탕진하고 결국 파산에 이르는 사람도 종종 있기에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계대출이 사상최대라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은행의 무서움을 알고 대출금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네 사정이 안좋아지면 가차없이 회수하는 것이 은행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