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우리나라는 인스턴트 라면을 주로 먹는 반면 일본은 라면 전문점들이 굉장히 많고 가게마다 맛도 다양합니다.


일본에는 '시메라면'이라는 말이 있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마무리로 따듯한 라면 한 그릇을 먹는 것을 뜻하는데, 그만큼 일본인들의 라면 사랑은 각별합니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이면 식사를 위해 라면집을 찾는 손님들로 붐비고, 일부 유명한 곳은 한참을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길게 줄이 늘어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라면을 좋아하는 일본이다보니 마트나 편의점에도 인스턴트 우동이나 소바는 물론 라면도 팔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끓여서 먹는 봉지라면보다는 컵라면이 주를 이룹니다. 


꾸준히 인기있는 롱테일 제품도 있지만 신제품이 굉장히 자주 나오는 편이라 다양한 라면을 맛볼 수 있는데, 신제품 출시후 시장의 반응에 따라 판매를 계속 하거나 상품판매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가끔 제 입맛에 맞는 제품이 나오더라도 어느새 판매 중단이 되어 더이상 먹을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지난주부터 지겹도록 내리는 비때문에 기온도 많이 내려갔고, 기분 탓인지 따듯한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최근 인스턴트 음식을 가급적 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편의점에 들렀다가 컵라면을 보고는 갑자기 먹고싶은 충동에 하나 사가지고 왔네요.




전에 보지 못한 상품인데 유명한 라면가게의 맛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이타마,오오미야 지역의 '노로시'라는 라면가게의 맛이라고 적혀 있네요.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맛, 행렬이 이어지는 돈코츠+생선 라면이라고 합니다.


일본에는 이렇게 유명한 라면집의 맛을 재현한 컵라면이 자주 출시가 되고 있는데, 그냥 맛을 흉내낸 수준이 아닙니다. 이러한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더군요. 방송에 소개된 컵라면의 출시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명한 라면집 컵라면 출시과정


우선, 출시하고자 하는 라면집의 사장에게 찾아가 제품의 출시에 대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선뜻 허락해 줄거라 생각하겠지만 자신의 라면에 자부심이 대단한 일본인들은 가게의 이름을 걸고 출시되는 라면이 실제 라면에 비해 맛이 떨어져 가게의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 허락을 잘 안해줍니다. 컵라면 회사 담당자가 반드시 납득할만한 제품으로 만들어 내겠다며 끊임없는 영업과 설득으로 겨우 허락을 받아내고서야 제품 개발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제품개발에 착수를 하면 면의 식감은 물론 국물까지 다양한 재료를 배합하여 해당 라면집과 같은 맛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제품은 라면집 사장이 시식을 해야 합니다. 사장이 자신의 라면과 같은 맛이 아니다라고 하면 조언을 듣고 다시금 시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사장이 납득할만한 맛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며 사장의 'OK'를 받고서야 겨우 시장으로 출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끝까지 사장의 인정을 못 받으면 제품출시는 불가능 합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판매되는 유명 음식점 이름이 적힌 컵라면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므로 100% 완벽한 맛은 아니더라도 컵라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해당 라면집의 맛을 즐길 수 있는 퀄리티의 제품이므로 멀리까지 가지 않고도 유명 라면집의 라면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사온 컵라면의 속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뚜껑을 열면 면위에 분말스프와 건더기가 들어있고, 액체스프와 '후리카레'라는 분말이 따로 들어 있습니다. 뜨거운 물을 표시선까지 부어 뚜껑을 닫은 후 면이 익는 동안 액체스프를 뚜껑위에 올려 데워주면 됩니다. 후리카케와 액체스프는 면이 다 익은 후 나중에 넣어줍니다.



면이 다 익었고 데워진 액체스프와 후리카케를 넣었습니다. 후리카케는 돈코츠생선라면이라는 이름처럼 생선가루인 것 같습니다. 이제 잘 저어주면 끝입니다.




돈코츠라면의 국물은 보통 한국의 곰국과 비슷한 색깔이 나는데, 생선가루를 넣어서인지 연갈색 국물입니다. 오사카에서는 생선가루가 들어간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과는 달리 전혀 비린 맛 없이 오히려 굉장히 진하고 구수한 국물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국물은 진하지만 짜지는 않아서 한 방울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전국에 수많은 유명 라면집이 있는 만큼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는데, 사람마다 입맛이 틀리므로 모든 제품이 입에 맞을 수는 없겠지만 전국 각지의 유명한 라면을 간편하게 먹어볼 수 있고 가게의 이름을 걸고 굉장히 신경써서 만든 제품이므로 맛도 어느정도 보장이 됩니다. 혹시 일본의 마트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구입할 때 유명 라면집 이름을 걸고 출시된 라면이 있다면 어느 제품이든 크게 실망할 일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