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집 근처에 사는 M군이 와이프의 고향에서 보내온 거라며 포도를 주었습니다. M군의 일본인 와이프는 '야마가타'라는 곳이 고향으로 과일이 굉장히 맛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미 혼인신고는 했지만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M군네 부부는 얼마전 야마가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왔고, 10월에 한국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결혼 날짜를 잡을 예정입니다.


둘이 사귀기 전부터 제가 굉장히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기에 지금도 부부문제는 깨알같이 저한테 상담을 하고 있는 M군은 요즘들어 와이프 자랑을 심하게 합니다. 와이프 하나는 잘 얻은 것 같다며 늘 자랑을 하던 M군이 이번에는 어머니 환갑선물을 사러 갔다온 이야기를 해주네요.



M군네가 한국에 가는 날짜에 마침 어머니 환갑이 있어 와이프에게 이야기 했더니 선물을 사러 가자며 같이 쇼핑을 다녀왔답니다. M군은 그냥 용돈이나 드리고 말 생각이었는데, 와이프는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해 드리고 싶다며 꽤나 진지하게 선물을 고민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특별한 선물을 사드리려고 이렇게 고민을 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같이 쇼핑을 다니던 M군은 와이프가 결정한 선물에 깜짝 놀랍니다. 그의 일본인 와이프가 선택한 선물은 바로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M군이 조금 실망을 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와이프의 설명을 듣고나서는 굉장히 만족해 하며 저한테 자랑까지 하는군요. M군의 와이프는 왜 앨범을 시어머니의 환갑선물로 선택을 했을까요??



한국에서의 환갑은 꽤나 의미있는 날이라며 M군에게 설명을 들은 그의 와이프는 말 그대로 의미있는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고, M군과 함께 찍은 사진,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을 예쁘게 장식한 앨범에 담아 두고두고 보실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외국에 떨어져 있는 아들과 며느리다 보니 더더욱 그런 추억들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M군은 사실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설명을 듣고 충분히 만족했다고 합니다. 사진을 출력하고 정리하고 앨범을 장식하고, 아직 서투른 한국어지만 편지도 쓰고, 선물 준비에 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지만, 그런 선물을 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와이프가 너무 좋고, 그런 선물을 받아서 싫어하지 않고 값비싼 명품보다 오히려 더 좋아해 줄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좋다고 하는군요.



한국에서는 일본인 여성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여성들은 의외로 순진하고 순수한 면이 많습니다. 친구들 생일이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앨범을 만들거나,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정말 작은 선물이라도 정성스레 포장하고 기쁘게 받습니다.


제가 아는 일본 여성의 대부분은 멋이 아닌 실용적인 손수건을 지참하고 다니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실용적인 수첩이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항상 약속이나 일정을 메모합니다. 연인에게는 물론 친구 사이에도 손편지 쓰기를 즐겨하고 승용차가 없어도 당연한 듯 자전거나 전철을 타고 데이트를 합니다. M군네도 그렇지만 대부분 결혼을 하면서 집을 사야한다는 생각도 없어서 월세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림도 필요한 것 외에는 각자 쓰던 것을 가져와서 쓰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정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보다 소소한 정을 자주 나누고 사는 것이 일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더라도 작은 정을 표현할 줄 알고, 비싼 선물이 아니라 소박한 선물이라도 기쁘게 받을 줄 아는 일본인들이 왜 부럽게 느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