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외식보다는 가급적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을 좋아해서 마트를 자주 갑니다. 예전에는 그냥 싸고 품질 좋아보이는 것을 마음껏 바구니에 담았는데, 요즘은 손에 집었다가도 다시 내려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슈퍼는 대부분의 제품에 산지를 표기하고 있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방사능에 민감해져서인지 센다이, 후쿠시마는 물론 그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잘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산지 표기가 없는 제품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산지 표기가 있는 제품 중 지명만으로는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반드시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집에 쌀이 떨어져서 반찬거리도 살겸 마트를 들렀습니다. 일본에는 코시히카리, 히토메보레, 아키타코마치 등 쌀의 종류도 다양하고 쌀로 원산지에 따라 맛도 다르고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품종이 코시히카리인데 후쿠이현에서 만들어진 일본산 품종입니다. 그러나 주요 산지는 후쿠이가 아닌 니가타현, 이바라키현, 미야자키현 등이 유명하며 이 중 미야자키현을 제외하면 모두 후쿠시마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트에 들렀더니 도야마현(富山県)에서 생산된 쌀을 굉장히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포장지에는 도야마현산 코시히카리 30%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본에는 유명한 품종의 쌀과 브랜드 인증을 받지 못한 쌀을 혼합해서 단가는 낮추면서 품질의 밸런스를 맞춘 제품들이 많이 출시되는데 그런 제품은 위와 같이 어떤 품종의 쌀이 몇 퍼센트 섞여 있는지 표기를 합니다.



포장지의 뒷면을 보면 복수원료쌀이라고 적혀 있고, 국내산 100%, 그 중 도야마현 코시히카리 30%라고 적혀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블랜딩 된 제품이 저렴하게 출시되면 곧잘 사곤 했었는데, 지금은 정확한 산지의 표기 없이 단순히 '국내산' 이라고 표기된 제품은 구매하지 않습니다. 저 '국내산'에는 후쿠시마산 쌀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도야마현(富山県)은 후쿠시마와는 꽤 거리가 있는 지역이라서 안심하고 먹을 수는 있지만 혼합된 다른 쌀들의 원산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이 제품은 구매하지 않기로 합니다.



바로 옆을 보니 후쿠이산 코시히카리, 그것도 올해 수확한 쌀 100%의 제품을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품도 산지와 구성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기에 따라 신마이(올해 생산한 쌀) 100%라고 적어놓고 뒷면에는 국내산 쌀 100%, 그 중 후쿠이산 코시히카리 30%(신마이 100%) 라고 적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확인해 봅니다.



뒷면의 표지에는 단일원료미, 즉 후쿠이현 코시히카리만으로 구성된 제품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후쿠이현은 센다이나 후쿠시마와는 굉장히 멀리 떨어진, 오사카에서 가까운 지역이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구매 결정.


쌀은 물론 야채, 과일 등 반드시 원산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들어버려서 장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한일커플인 M군네도 이 문제로 종종 싸우곤 했습니다. 특히 M군의 와이프 고향이 야마가타현인데 후쿠시마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M군이 방사능 오염지역이라고 자꾸 강조하자 자신의 고향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미웠는지 화를 내곤 했다네요. 야마가타에 사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과일이며 고기도 M군은 전혀 먹지 않습니다. 서운해 하던 M군의 와이프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너무 방사능으로 요란을 떠는 것 같지만, 쉬쉬하고 있는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도쿄 위쪽 지방은  방사능이 꽤 위험하다는 말들도 많아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원전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