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우리집 인터폰에는 녹화기능이 있어서 초인종을 누른 사람들이 자동으로 기록이 된다. 집을 비운 사이에도 누가 다녀갔는지 확인을 할 수 있는데 최근 두번이나 경찰이 왔다 간 것을 확인했다. 경찰이 집까지 찾아오다니 무슨일일까 궁금하면서도 조금 무서웠다. 지은 죄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껏 10여년간 일본에 살면서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 경우는 한번도 없었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관할 경찰서로 전화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우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괜히 신경쓰지 말자 생각하고 관뒀다. 


그런데 어제, 자택 근무를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화면을 보니 경찰이다. 



지난번에는 한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두명이다. 순간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하고 사소한 것까지 기억을 짜내면서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아주 잠깐이지만 고민했다. 결국 당당히 문을 열고 도도하게 경찰을 맞이했다.


경찰 : 곤니치와


나 : 무슨일이죠?


경찰 : 여기 사는 분 맞습니까?


나 : 네 그렇습니다만...


경찰 : 몇번이나 찾아왔는데 안계시더라구요


나 : 네...근데 무슨 일로??


경찰 :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세대조사를 하고 있는데 협력해 주세요


나 : 세대조사요?


경찰 : 네. 지진, 화재, 범죄 등 각종 사고에 대비한 간단한 안내와 만약의 재해시 연락가능한 비상연락처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나 : 아...그렇군요. (휴~~~)


내용을 듣고서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안심이 되었다. 죄도 없는데 왜 경찰만 보면 긴장이 되는지...


간단한 양식의 카드를 작성해 주었더니 지진이나 쓰나미가 올 때의 주의점과 준비사항을 체크할 수 있는 인쇄물을 한장 주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지진이나 쓰나미를 대비해서 평소에 미리 준비해놓고 만약 발생했을 경우에 대한 간단한 지침사항과 비상시 챙겨야 할 물품리스트 정도이다. 


지금껏 일본에 살면서 경찰이 집까지 찾아와서 이런 서비스를 하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 줄곧 번화가에 살다가 조금 조용한 동네로 이사를 했는데, 주택가라 그런지 경찰들이 주민생활에 조금 더 깊이 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경찰이 불시에 집으로 찾아오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