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일본인들은 목욕을 좋아한다.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온수욕을 즐기는데, 가족이 있는 경우 한번 물을 받아놓고 차례로 들어가기도 한다. M군의 일본인 여자친구도 하루에 한시간씩 꼭 온수욕을 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한다.


이렇게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이다 보니 동네마다 '센토'라고 하는 대중 목욕탕이 있었는데, 주거의 현대화로 집의 목욕시설이 좋아진 것과, 스파온천 등 도심형 대형 온천 등이 생기면서 낙후된 시설의 센토는 예전보다 그 수가 많이 줄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업 중인 센토는 많이 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한다. 이는 분명 센토만이 가지는 매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예전에는 온천이나 사우나만 다녔는데, 이사 온 후로 집 근처에 센토가 있는 것을 알고 M군과 가끔 다니던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었다. 편리한 현대식 목욕시설에 비하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예전보다 더 자주 센토를 이용하고 있다.



센토의 입구에는 [ゆ] 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노랭이 걸려 있는데, '유'라고 읽는다. 'ゆ'는 한자 '湯'의 일본어 발음인데 뜨거운물, 목욕물, 온천물 등의 뜻으로 쓰인다. 일본에서 길을 지나다 저런 글씨를 보면 '센토' 즉 목욕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으로 보이는 빨간 츄리닝에 다리는 M군이다.



M군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이렇게 신발을 넣는 로커가 있다. 원하는 곳에 신발을 넣고 번호가 적힌 나무 열쇠를 뽑으면 문이 잠기고, 열쇠는 가지고 안으로 들어 간다.



들어가는 입구는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고 우리는 당연히 남탕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진의 중앙에 표시된 부분쪽에 계산대가 있고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는데 입욕료를 계산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계산대에 앉아있는 사람은 한명이고 남탕과 여탕 모두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그 부분은 벽이 없어서 카운터 너머로 남탕과 여탕의 탈의실이 훤히 보인다. 그렇다고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자. 불행(?)히도 여자 탈의실 쪽은 로커 앞쪽에 거치형 파티션으로 남자들이 훔쳐볼 수 없도록 해놓았으니까...


반대로 여자들은 남탕을 훤히 볼 수 있다. 남녀평등이라더니... 남자들도 부끄럽다구...


그보다 문제는 계산대에 앉아 있는 사람인데 남탕과 여탕이 다 보이는 포지션이다. 아주머니가 앉아 있을 때도 있지만, 아저씨가 앉아 있을 때도 있다. 여탕의 탈의실 로커쪽은 파티션으로 가려놨다 하더라도 욕탕을 드나드는 곳이나 드라이로 머리 말리는 곳 등은 파티션이 없을텐데 아저씨가 계산대에 있을 때는 여자 손님들은 조금 민망할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사실 남자도 아주머니가 보고 있으면 민망하긴 하다.


일본인들은 그런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아무 거리낌이 없지만, 처음 센토를 갔을때는 굉장히 어색하고 민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뭐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어디서 들은 애기인지 모르겠지만, 목욕전에 우유를 마시고 땀을 빼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해서 언젠가 부터 우리는 입욕전에 항상 우유를 마신다. 이곳은 유키지루시 우유를 팔고 있다. 들어올 때 사는걸 깜박해서 옷을 다 벗고서 우유를 계산하러 갔는데, 전라로 아주머니한테 계산을 했다. 우리가 계산하고 있는 동안 여탕 입구 문이 열리면서 여자 손님들이 들어오고, 눈이 마주쳤지만, 진짜 이제 아무렇지 않다. ㅋ



우유를 마시고 우리는 본격적인 목욕을 하러 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안쪽은 사진촬영을 할 수가 없어서 글로 전달할 수 밖에 없겠다. 센토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데, 입구를 들어서면 계산대, 그 다음 탈의실, 그리고 욕탕이 있다. 


욕탕에는 보통 냉탕은 하나, 온탕은 센토의 규모에 따라 수가 틀리다. 작은 사우나가 있는 곳이 대부분인데, 센토에 따라 사우나 이용이 유료인 곳도 있으나 우리가 가는 곳은 사우나도 무료다. 


신기하게도 지금껏 가본 센토에는 대부분 전기욕탕이 있었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찌릿찌릿 전기 자극이 온다.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욕탕안의 샤워시설은 집에서 쓰는 샤워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불편하다. 최신 목욕시설에는 각종 샴푸, 린스 등 각종 세면도구가 구비되어 있지만, 센토는 아무것도 없다. 직접 가져가던가 계산대에서 일회용을 사서 쓸 수 있다. 심지어 수건도 없는데 이마저도 계산대에서 살 수 있다. 가격은 몇십엔 수준으로 크게 비싸지는 않다.


그 대신 입욕료가 저렴한데, 우리가 가는 곳은 440엔이다. 예전에 자주 가던 시내의 사우나가 1시간 시간제한에 1100엔이었고 1시간 이상 무제한에 2000엔이 넘었던걸 생각하면 무척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때수건으로 때도 밀고 할텐데, 일본 센토에서 때미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때수건을 팔지도 않는다. 그러나 M군은 항상 때수건을 지참, 구석구석 때를 밀어야 목욕한 기분이 난다고 한다. M군이 열심히 때를 밀고 있으면 신기하게 쳐다보는 일본인도 가끔 있다. 실컷 때를 밀고나면 나한테 때수건을 건네면서 등을 밀어달라는 M군. 그걸 받아들고 열심히 밀어주고 나면 이제는 내 등을 밀어 준단다. 때미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등은 손이 잘 가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M군에게 맡긴다. 때 나오는걸 보며 놀리고 웃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일본의 센토에 가면 한국의 대중목욕탕과 다른 점이 몇가지 있는데, 하나는 위에도 언급한 양쪽이 다 보이는 계산대이고 또 한가지는 남탕과 여탕 사이의 벽이 천정에 닿아 있지 않아서 옆 탕의 목소리가 다 들린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옆 탕이 보일만큼 벽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여탕의 목욕하는 소리, 수다떠는 소리가 다 들린다. 물론 여탕에서도 마찬가지로 남탕이 다 들린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도 상당히 낮설고 괜히 이상한(?) 상상도 하게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목소리가 서로 들리는 것이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여탕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애기를 하자 남탕에서 대답을 한다. 내용인즉, 


"히로시~ 엄마 이제 다 씻었으니까 슬슬 나갈꺼야~ 너는 다 씻었어??"


"응~ 다 씻어가~ 금방 나갈게~"


이렇게 가족끼리 함께 센토를 찾은 경우 벽 넘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 이런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시간정도의 목욕을 마친 우리도 밖으로 나와서 나갈 채비를 한다. 로커에서 옷을 갈아 입는 동안에도 여탕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여자손님들에 그대로 노출되는 우리는 이제 그런것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센토는 엄밀히 온천과는 다르다. 그러나 집 욕조에서 하는 목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개운함을 준다. M군과 나는 집근처에 센토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항상 애기를 한다. 시설이 좋지도 않고, 한국과는 다른 문화에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 가게 된다. 시내의 시간 제약이 있거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스파온천, 사우나 등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긋함과 편안함이 있어서 일까?


다음주에도 함께 센토를 가기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