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는 남자

금요일은 항상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쇼핑을 잔뜩 합니다. 주말 식량을 냉장고에 비축하기 위해서죠. 사온 것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합니다. 별로 안샀다고 생각했는데 냉장고가 가득하니 주말에도 다 못먹을 것 같습니다. 한참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립니다. 얼마전 바로 근처로 이사온 친한 동생입니다. 일본인 여자친구와 동거하기 위해서 이사를 했는데 집을 알아볼때도 같이 보러 가주곤 했는데 결국 저희집 바로 옆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여자친구와 장보러 갔는데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냐고 묻네요. 무슨 파스타를 만들건지 물어봤더니 알리오올리오, 까르보나라 이 두가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는데 한번도 만들어 본적이 없다면서 괜찮을까 싶지만 일단 필요한 재료를 알려주고 저는 밥을 먹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하고 있는데 다시 걸려온 전화, 파마산 치즈 사는 것을 깜박했다며 있으면 가지러 여자친구를 보낸다고 합니다. 요리한다고 정신이 없는지 분주한 소리가 들리는데 괜히 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식사도 마쳤겠다 그냥 가져다 주는게 좋겠다 싶어서 제가 가기로 합니다.


파마산 치즈를 들고 동생네 집앞에 도착하니 요리하는 냄새가 진동을 하네요.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어 자주 왕래하고 일본인 여자친구와도 친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잘 하고 있나 봤더니 주방은 온통 난리가 났고, 삶아놓은 파스타 면은 불어서 양이 많아져 있네요. 파스타 두개 만들면서 이 난리라니 ㅎㅎ



알리오올리오는 이미 만들어서 테이블에 올려져 있고, 치츠가 도착했으니 이제 까르보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들어 주고 싶지만 우리집 주방도 아니고, 더구나 여자친구를 위해서 만든다는데 거들어 주면 안되죠. 그냥 옆에서 지켜만 보면서 가끔 조언만 해줍니다. 파스타 면이 불기도 했지만 마르기도 했고, 더욱이 면 삶은 물도 몽땅 버리고 없어서 응급처방으로 살짝만 도와줬습니다. 열심히 까르보나라를 만드는 동안 일본인 여자친구는 샐러드를 준비하네요.


그렇게 만들어진 한일커플이 만든 최초의 파스타입니다.


알리오올리오


알리오올리오는 촉촉함이 전혀 안느껴 지는군요. 촉촉함은 커녕 너무 말랐다. ㅎㅎ

삶아놓은 면이 많이 마르고 불은 탓에 까르보나라도 저와 비슷하게 될뻔 했지만 대충 살려냈습니다.

좋은 계란이라 그런지 노른자가 워낙 색이 짙었고, 생크림을 많이 넣지 않았기 때문에 까르보나라의 색은 좀 노랗게 나왔네요.

샐러드는 참 맛있게 보입니다. 샐러드가 담겨 있는 그릇이 사실은 그릇이 아니라 후라이팬이라는 사실은 안비밀. ㅎㅎ


금방 식사를 하고 왔지만 같이 먹자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맛만 보기로 합니다. 

생각보다 맛은 나쁘지 않군요. 다행이다. ㅎㅎ


일본인 여자친구가 눈치 있게 와인을 내어 옵니다.

가볍게 한잔하면서 기분좋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한번 만들어 봤더니 이제 감이 온다고 하는데 과연 어떨지.

조만간 다시 파스타에 도전한다고 하니 기대해 봅니다.